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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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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RN 댓글 0건 조회 287회 작성일 19-11-27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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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교육학과 김민서

 

1. 들어가며

 

『장인의 탄생』이라는 책의 제목과 옆에 나란히 배치된 가위질, 베이킹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사실 이러한 책 표지의 요소들만 봤을 때에는 이 책이 우리 사회의 어떤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특정한 기능사들의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고, 그들과 같은 직업 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 책일 것이라 예상했었다. 사실 ‘장인’이라는 말에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인자, 프로 등과 같은 말과는 다른 어떤 특별함이 있다. 어떤 분야의 장인이 된다는 것은 그 분야에 오래 몸담고 깊이 있는 내공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뭔가 더 초월적이고 비범한 힘을 갖고 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장인’이라고 하면 보통은 흰 가운과 긴 모자를 쓰고 양조장에서 나무로 된 대형 통 안을 젓고 있는 일본 간장 장인과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그 지점부터 혁파했다는 데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러한 몇 대째 내려오는 전통 가업을 잇는 장인의 이미지를 깨고 지금 우리의 곁에서, 같은 공동체 내에서 호흡하고 있는 책 속의 그들을 ‘현대적 의미로서의 장인들’로 재개념화 했다. 누구나 장인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아무나 장인이 될 수는 없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나도 장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과 더불어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모종의 치열함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일깨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장인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 자체가 계속해서 편견을 깨는 작업이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나를 포함하여 이 책을 읽는 사람 모두가 장인과 장인성,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일의 본질 등에 대한 편견이 상쇄되는 경험을 책장을 넘기는 내내 했을 것이라 본다. 특히 일을 여가와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현대인들과는 다르게 현대적 의미의 장인들은 일 자체에서 즐거움과 삶의 이유를 찾는다는 것과 같은 얘기들은 그것이 편견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뜻밖의 문제의식과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앞서 장인이라는 말에는 어떤 특별함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만큼 장인이라는 칭호를 부여받는 것은 어떤 다른 사회적 인정이나 보상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장인이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고 하며 장인을 일하는 사람의 전범으로 규정한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18명의 장인들에는 내가 가고자 하는 진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장인은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듯 누구나 장인이 될 수 있고, 그 장인이 일에서의 전범 역할을 한다면, 내 전범을 내가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 동경해오던 내 직업과 연관된 유명인들 중 이 책의 조건들에 부합하는 장인을 찾아 ‘나의 장인’으로 삼는 작업을 시도해보았다. 그러면서 책에서 설명하는 장인성의 개념과 조건들에 대한 이해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고, 장인성을 더욱 피부로 느껴볼 수 있었다.

그 개념 범주를 넓혔다고 해서 이 책이 말하는 장인은 절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조건들은 까다롭기까지 한데, 일반인들 세계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요소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의 장인들도 모든 요소들을 최상의 수준으로 가지고 있진 못하며,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책의 말에 용기를 얻어 나의 장인을 찾고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장인성과 관련한 교훈과 더불어 앞으로 내가 추구해야 할 장인성을 찾는 일을 해보고자 한다.

 

2. 글쓰기 장인수업 장인

 

본격적인 장인 찾기에 앞서 우선 내가 찾고자 하는 장인은 어떤 분야의 장인인지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본고의 주제가 ‘나의 장인 찾기’이지 ‘나의 자아 찾기’는 아니므로 이에 대한 언급은 간략하게만 하고 넘어가려 한다.

꽤 오랜 시간동안 나의 장래희망은 두 가지, 교사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문학과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서 국어 교사가 되고 싶기도 했고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유 시간이 많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나이가 들면서 취향 등이 구체화되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시나리오로 구체화되었다. 드라마와 영화광이기도 하고 자기 생각을 농밀하게 풀어나가는 소설보다는 대중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친근하면서도 많은 공감대와 위로를 줄 수 있는 스토리를 풀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막연히 직업적으로만 진로를 생각하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일’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다. 그 직업을 갖고 싶은 것과 그 일 자체를 하고 싶은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너무나 근본적인 질문을 이제야 던져보게 되었다. 직업을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교사와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인식의 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찾게 된 장인들은 글쓰기 장인과 수업 장인이었다. 사실 교사의 역할은 ‘수업’ 외에도 많고, 어쩌면 수업보다 그 이외의 역할들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장인성은 어느 정도 숙련될 수 있는 가시적인 능력을 포함해야 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해서 수업 장인으로 한정지어 찾게 되었다. 평소 존경하던 시나리오 작가들과 선생님들은 많았지만, 막상 장인성을 대입해서 생각하려니 걸리는 게 많았다. 우선 15년 내외의 오랜 경력이 있어야 했고, 눈에 보이는 결과로 표상된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했으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 더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의지까지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장인들을 선정한 이유는 많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책의 장인성을 적용해 분석해 나가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장인은 김은숙 시나리오 장인과 최태성 수업 장인이다. 이제 그들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그들이 어떻게 해서 장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책에서 실시한 연구처럼 직접 그들을 만나 실제적인 인터뷰들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그동안 그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해온 인터뷰로 조사를 대신해야 했음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3. 김은숙 시나리오 장인

 

장인이 어떤 일의 분야에서나 성립될 수 있는 개념임에도, ‘시나리오 장인’은 그 어감이 뭔가 어색하다. 많은 편견들에서의 탈피에도 불구하고 ‘장인’이라는 말이 자아내는 전통적인 느낌과 시나리오라는 현대적이고 이국적인 어감이 묘하게 이질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글쓰기 장인보다 굳이 시나리오 장인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시나리오라는 장르가 갖는 특성이 여타의 다른 글쓰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인데, 시나리오는 대중성의 제약과 영상으로 구현될 매개로써의 작품이라는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의 지향점이나 특성, 형식 등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하필 타이밍 좋게 그녀가 쓴 ‘태양의 후예’가 최근에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바람에, 김은숙 작가를 장인으로 선정한 것에 그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을까 민망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김은숙 장인은 내가 드라마를 보고 내용을 절반도 이해를 못하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들을 쓴 작가이다. 나는 10년 넘게 그녀와 그녀 작품들의 광팬이었고, 모든 작품들의 거의 모든 회차를 다 섭렵했으며 일부는 몇 번씩이나 돌려보기도 했다. 그녀는 현재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작가이다. 주로 2~30대 청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불린다. 두 편 정도 제작했던 영화는 둘 다 흥행에 실패했지만, 드라마는 가장 첫 작품을 제외하고는 시청률 40%를 넘긴 ‘파리의 연인’을 시작으로 ‘프라하의 연인’, ‘연인’, ‘온에어’, ‘시티홀’,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태양의 후예’가 모두 히트를 쳤고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책의 장인들은 우연히 그 길에 입문하여 지난한 노력 끝에 그 길을 필연의 길로 만들었는데, 김은숙 장인 역시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는 지나가는 친구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사실 원래 그녀의 꿈은 소설가였고 소설가로 등단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공들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시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란 김은숙 작가에게는 책을 사는 것조차 사치였지만, 글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능력이 뛰어나 어릴 때부터 지역 내의 백일장은 다 휩쓸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곧바로 부엌가구 브랜드 대리점의 여사무원으로 취직하지만, 소설에 대한 열망을 놓지 못해 팬이었던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며 지낸다.

그렇게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잡지에서 신경숙이 졸업했던 서울예대 입학생 모집 광고를 보게 되고 그곳이 자신이 가야할 길임을 직감해 어머니에게 서울로 발령이 났다는 거짓말을 하고 27살의 나이에 서울예대 신입생으로 입학한다.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긴 했지만, 그리고 재능도 있었던 그녀였지만 소설가로 인정받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른한 살까지 30만 원짜리 월세 방을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연극판에 뛰어들어 희곡을 쓰던 그녀는 신춘문예 당선에는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그 일이 그녀에게 최고의 명성을 가져다주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녀의 연극을 지켜봐오던 방송사 피디 친구가 “드라마 한 번 써 볼래?”라고 말한 것으로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바뀌게 되었다. 소설에서 연이어 실패했다고 해서 전혀 새로운 일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일에서 새로움을 만들어 냈고, 그 새로움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전에 했던 수많은 습작을 통한 고된 훈련 덕분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알게 되었다 해도 그녀는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하루밤새 80페이지에 달하는 기획안을 들고 방송사를 찾았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결국 첫 드라마 ‘태양의 남쪽’을 방영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결과는 시청률 참패로 이어졌다. 그래도 김은숙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자신이 잘할 수 있고 대중들이 선호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일 년 뒤에 나온 것이 그녀 인생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파리의 연인’이었다.

장인성에는 배움을 넓히는 것, 계속되는 확장과 창조도 포함되어 있는데, 김은숙 역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 호평을 받았다. ‘파리의 연인’의 성공 이후 계속된 ‘연인’ 시리즈들도 성공을 거두고 더 이상 남부러울 것이 없었을 즈음 김은숙 장인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그녀의 최대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버리고 ‘온에어’와 ‘시티홀’에서 연거푸 직업적, 사회적인 성공을 메인 테마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대중성 면에서는 최고의 인정을 받았지만 주로 남녀 간의 연애만을 다룬 비슷비슷한 작품 구성이나 분위기 등으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이 두 드라마까지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자신의 작품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게 본인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 후 ‘신사의 품격’에서는 남다른 에필로그로, ‘태양의 후예’ 때는 최초의 사전제작 드라마를 집필하며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김은숙 장인은 배움을 넓힐 뿐만 아니라 베풀기도 하는데, 자신이 나온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후배들과 함께 집필을 하며 그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전수하고자 한다. 특히 요즘은 기회가 되면 대학이나 공개 강연 등 청춘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강의를 하고 인생의 조언을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인생에는 마법 같은 순간이 옵니다.

그 때 준비된 사람은 자기 인생을 마법으로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

역경의 순간을 그냥 버티지 말고 훈련으로 가득 채우세요.

우리에게도 마법 같은 순간들이 꼭 찾아올 거예요.

 

최근 한 강연에서 그녀가 청년들을 위해 했던 이 말은 한동안 SNS에서 떠돌며 아직 꿈을 펼쳐보지 못한 많은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다.

그녀의 일은 단순히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서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이끄는 것 외에도 한국 미디어 콘텐츠의 우수성을 알리고 문화 한류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당장 최근에 방영된 ‘태양의 후예’만 해도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 회당 조회 수가 약 1억 뷰 이상을 돌파하고 여러 부가가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만 3조원이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사전제작으로 집필이 된 이유도 한·중 동시방영을 위한 것으로, 중국 시장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인데, 김은숙 장인은 사전제작이라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위험성을 감수하고 한국 드라마사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김은숙 작가는 회당 3000만 원 정도의 고료를 받는 1급 작가이지만 이처럼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 통해 고원에 머무르려는 노력을 한다. 분명 사회적 명성과 기대가 있어 부담스러울 때가 많고 실제로 시청률도 몹시 신경이 쓰인다고 말하는 그녀지만 그녀는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즐긴다. 그녀는 일단 작업이 시작되면 그 기간 동안에는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글만 쓴다고 한다. 결혼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는 기자가 결혼 계획을 묻자, 일 년의 반을 일과 외도하는 여자를 이해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면 하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드라마에 대한 계획만 있고 결혼계획은 없냐고 하자그는 웃으며 결혼해야죠.” 한다다만일 년에 6개월 동안 외도를 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면 할 수 있다고일 년에 6개월 정도 자신은 드라마만 생각하고 드라마에만 매달리며 드라마와 연애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남편을 만나 딸을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일산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24시간을 집필에만 매달리는 탓에 가족들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낸다. 이런 외로움까지 감수하는 까닭은 그녀가 글 쓰는 것 자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이 수고로움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말했듯 그녀에게는 일과의 연애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4. 최태성 수업 장인

 

고등학생 시절, 천생 문과였던 내가 수학보다도 더 싫어하는 과목이 있었는데, 바로 국사였다. 거시적인 통찰력이 없는 탓인지, 내게 국사는 그냥 두꺼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야 하는 과목이었고, 국사 때문에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얼마 전, 임용시험의 필수조건으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을 보는데 문득 그 때 생각이 났다. 그렇게 국사에 맥을 못 차리던 내가 근현대사에서 1등급을 받았던 그 날이. 별명이 ‘역사 바보’였던 나를 그렇게 성장시킨 교사가 다름 아닌 최태성 수업 장인이었다.

최태성 수업 장인은 현 고등학생들과 대학입시를 치른 지 오래되지 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스타다. 한창 ‘**스터디’와 같은 유료 인터넷 강의가 강세였던 시절 자신만의 신념으로 끝까지 EBS 강의만을 고집했고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돕기 위해 헌신을 다했다. 그가 유명한 것은 단지 그의 교육적 신념 때문만은 아니고 전적으로 그의 강의력 덕분이다. 직접 경험해본 바로는, 역사를 무조건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역사적 흐름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고 역사를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와 닿게 해준다. 그저 흥미로운 강의인 것만은 또 아니고 그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판서’에 있다. 학생들은 그를 판서의 신이라 부르는데, 50분 진행되는 수업에서 큰 칠판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해당 주제의 흐름을 모두 도식화해서 한 판의 판서로 정리한다. 미리 그려놓거나 준비해 오는 것도 아니고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판서를 그려나간다.

 

 

최태성 수업 장인은 처음부터 역사교육에 큰 뜻을 품고 입문한 것은 아니고 다른 장인들처럼 우연하게 대학 입시에서 2지망 사학과에 붙는 바람에, 그리고 단순히 교사가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역사교사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수업개발에 열의가 생기게 되고, 역시 우연히 그저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 나갔던 EBS 강의에서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때부터 최태성 장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교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고자 했다. 지금이야 강의를 촬영하며 NG 한 번 안 내는 베테랑이지만, 처음 발령받아 수업을 맡았던 초임교사 시절에는 매일같이 야근하며 하루 종일 수업 준비만 하기에도 벅찼던 말 그대로 백지 상태였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직접 부딪히며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역사적인 흐름을 학생들이 보기 쉽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숱한 밤을 고민한 결과, 지금의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한민국 1타 역사 강의라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획기적인 판서법과 흥미로운 수업 내용 이외에도 최태성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역사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교육적 방법을 시도한다. 강의 끝에 항상 자신이 직접 편집한 역사 관련 영상을 보여주거나, EBS와 협력하여 각종 역사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등 배움을 넓히는 동시에 베풀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한다. 최근에는 그 관심 영역을 학생들에서 전국민으로 넓혀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역사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을지 고민하며 교양, 예능 등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아직 본업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이며, EBS 강의를 14년째 성실히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태성 장인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힘든 고원 생활을 지속한다.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원칙을 고수하며 소신껏 일을 수행해나가는 장인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매일 4시간씩 잠을 청하며 모든 일을 해내는 데도 그에게는 학창시절 자신이 선생님들에게 그토록 갈구하던 수업을 몸소 구현한다는 뿌듯함과 행복감이 충만해있다.

 

5. 나가며

 

지금까지 만나본 김은숙과 최태성, 이 두 명의 장인들은 각각 창조성, 배움의 넓힘과 베풂, 고원에서의 삶을 지속하는 진정한 장인성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평소에도 존경하던 분들이었지만 이렇게 장인성을 기준으로 그들의 삶과 일의 행적을 추적해나가는 작업을 하니 더욱 더 그 경지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인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찾는 선정 작업과 그들에게서 현대적 의미의 장인성을 발견해내는 작업이 모두 매우 흥미로웠다. SBS의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처럼 ‘장인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현대적 의미의 장인성을 갖춘 이 시대의 장인들을 찾아 나가는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책의 연구처럼 일정 정도 장인성을 갖추었다고 보이는 사람들은 분야를 뛰어넘어 장인성과 관련한 공통적인 특성을 공유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우연한 기회에 일에 입문하여 그 기회를 필연으로 만든 경험 같은 것은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많지 않은 특성일 것처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에 몰입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면 그 이상의 특별한 계기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책에서 말한 대로 많은 장인들이 우연한 기회로 입문한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 나가면서 일적인 성장을 이루고 일에 대한 애정까지 키우게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장인성의 요소와 관련된 용어를 빌어 이 두 장인에게서 배울 수 있는 대표적인 장인성을 꼽자면, 그들은 진정한 일의 해방자이며, 일에 긍정적인 의미로 완전히 미쳐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둘 다 일을 하는 기간 동안에는 잠자고 먹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글을 쓰거나 수업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도 꽤 있겠지만, 그들을 그저 성실한 현대인들과 다르게 구별 지어주는 특질은 그들은 그걸 힘들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통해서 최대의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은 관심과 흥미 자체가 온통 드라마와 역사교육에 있었다.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일을 우선시하였는데 그들은 일 자체를 너무 사랑해서 하는 것이지 다른 물질적 보상에는 크게 욕심이 없었다. 김은숙 작가 본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하는 ‘온에어’의 주인공 서영은이 했던 대사가 있다.

 

저는 회당 2천만 원을 받지 않아요그 아래로 받아요솔직히 회당 3500만 원까지 제안이 왔지만 거절했어요. 3500만 원어치 일을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나 싶더라구요지금도 충분히 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무리하게 욕심내고 싶지 않습니다.”

 

실제로 김은숙 작가 역시 당시에 원고료를 2천만 원 정도로 제한해서 받았다고 한다. 능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일지라도 그로 인한 만족감이 일 자체의 행복을 넘어서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최태성 장인 역시도 외부의 유혹이 없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선생님이라면 사교육계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으셨을 텐데?

– 제의 많이 받았고 흔들리기도 했다사교육에 나가는 게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내 인생에 사교육 진출은 없다좋은 교사가 되겠다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강의를 전하고 싶다는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싶다.

 

정말 일에 대해 ‘방법론적 사랑’을 가지지 않으면 갖기 힘든 결심들이다. 이런 신념을 고수하면서 그들은 일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진정한 일의 해방자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삶의 모든 리듬을 일에 집중시키려 했는데, 그것은 의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과연 나도 나만의 일을 갖고 난 뒤에 그들처럼 일에 진정으로 몰입하고 일에서의 해방을 맛볼 수 있을까. 아무리 간절히 염원했고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을 일인 것 같다.

 

6. 참고자료

 

  1. 장원섭장인의 탄생서울 학지사, 2015
  1. 최지은, ‘김은숙 작가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 드라마’, 텐아시아,

2009.07.07.,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669

  1. 백경선, ‘신우철 PD·김은숙 작가 인터뷰 촬영 에피소드’, 여성동아,

2005.11.14.,http://woman.donga.com/3/all/12/134313/1

  1. 황수정, ‘[굿바이 태양의 후예‘ 사전제작 성공+중국 신드롬+경제효과 3

별그대‘ 압도했다’, NEWSPIM, 2016.04.15.,

http://www.newspim.com/news/view/20160414000243

  1. 이대은, ‘EBS 한국사 스타 강사 최태성 인터뷰’, WIKITREE, 2014.07.22.,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8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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