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 연세춘추 [편집인칼럼] 2020년, 우리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그대 가는 길이 역사다’ > 기고 및 기사

본문 바로가기
기고 및 기사
기고 및 기사
Activities 기고 및 기사

[2020.08] 연세춘추 [편집인칼럼] 2020년, 우리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그대 가는 길이 역사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JRN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0-09-10 15:59

본문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편집인 장원섭(교육학부 교수)

모든 사람은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의 자취는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도 역사책에 기록되지도 않는다. 위대하거나 악명높은 사람이 남긴 행적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주위에는 이름 없이 잊힌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이들도 살아가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국을 남긴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픈 상처를 준 사람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이들의 삶의 발자취가 모이고 쌓여 역사가 이뤄진다. 비범한 사람을 기록하는 것 못지않게,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도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4.19 혁명이나 6.10 민주화 운동, 그리고 4년 전의 촛불혁명 역시 알려지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 한 명 한 명이 같은 마음으로 흔적들을 쌓아갔기에 가능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1천400여 년 전 신라에 세워진 황룡사지 구층목탑은 소실돼 주춧돌들만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은 마침내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인이 당시에 주변 9개국보다 강대국이 되고자 했던 신라인의 염원을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매일매일 무언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 특별히 2020년은 모두가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 사회와 각자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2020년에 사는 우리가 남길 흔적의 중심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다. 지금 가장 큰 미덕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리라. 감염의 공포로 인해 사람들과 함께하던 활동들을 가능한 접촉 없이 해내야 한다. 서로 못 만나도록 학교와 박물관, 교회가 문을 닫고 회사마저 가급적 나오지 말라고 한다. 교육, 여가, 종교 그리고 일 등과 같이 인간 삶의 필수적인 모든 영역에서 비대면 방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모이지는 못하지만, 친구나 동료들과 같이 활동해야 하므로 비대면 기술을 활용한다. 원격 수업, 온라인 게임, 동영상 예배, 화상 회의 등은 디지털 기술을 매개로 한다. 낯설고 어설프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디지털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됐다. 수십 년 전부터 빠르게 발전한 디지털 기술이 비로소 삶의 전 영역에서 전면에 떠올랐다. 2020년은 인류 역사에서 디지털 전환을 이룬 원년으로 기록될 것 같다.

찬란하고 화려한 기술 활용의 이면에는 어둡고 무거운 인간의 고통이 따른다. 매일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바쁘고 건강을 챙기기에도 힘겹다. 다른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 감염원이기 때문에 그 관계를 단절할수록 안전하다. 서로 떨어져 지내야 하니 고립과 외로움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없다는 건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진다. 울리히 벡의 말에 빗대자면, 코로나19는 이론상으로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다가간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감염병 위험 사회에서 실제로는 더 불평등해지고 더 양극화된다. 취약업종의 노동자는 더 위험한 작업환경으로 내몰리고, 저소득층과 고령층은 디지털 격차로 인해 활동에 더욱 제약을 받으며, 미래 교육이라고 각광 받는 온라인교육에서 학습격차는 더 커진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공포와 함께 반성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이미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 소외와 사회 파편화에 대해 더욱 깊이 성찰할 기회를 줬다.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사람들끼리 서로 마주하여 같이 먹고 놀며 배우고 일하는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19세기 말 콜레라 역병의 창궐로 인해 암흑에 빠진 조선을 언더우드가 미국의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에비슨이 손씻기 운동을 벌이며 헌신적으로 돌봐주었던 모습을 떠올린다.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도 우리는 그런 아름다운 흔적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진료하는 의료진에게 ‘덕분에 챌린지’를 통해 고마움을 전달하고,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자영업자에게 임대료를 깎아주며, 집에 인터넷이 미비한 대학생에게 카페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도록 교수가 커피값을 대주는 등과 같은 따뜻한 이야기들을 접한다.

코로나19와 함께한 2020년이 절반 넘게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에게 올 한 해는 삶이 중지된 잃어버린 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배우고 성장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이 시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와 내가 속한 집단만 살아남겠다고 세상에 생채기를 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보다는,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도 주변에 귀 기울이고 보살피는 인간다운 자취를 이어갈 수는 없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흔적들이 자신과 주위 사람의 기억으로 남고, 그것들이 쌓여 우리 모두의 역사가 될 테니까 말이다.

장원섭 교수(우리대학교 교육과학대학)  chunchu@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텔레그램 보내기
  • 텀블러 보내기
Total 47건 1 페이지
기고 및 기사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47
JRN
114 2020-09-10
열람
JRN
89 2020-09-10
45
JRN
122 2020-09-10
44
JRN
300 2020-03-07
43
JRN
368 2020-02-26
42
JRN
378 2020-01-27
41
JRN
392 2019-12-21
40
JRN
359 2019-12-21
39
JRN
436 2019-12-07
38
JRN
352 2019-12-07
37
JRN
343 2019-12-07
36
JRN
332 2019-12-07
35
JRN
306 2019-12-07
34
JRN
346 2019-12-07
33
JRN
290 2019-12-07
32
JRN
220 2019-12-07
게시물 검색

회원로그인


주소 : (우 03722)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 연세대학교 교육과학관 502호
Email : virtue@yonsei.ac.kr
Copyright (c) 장인성연구네트워크 All Rights Reserved.
그누보드5
주소 : (우 03722)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 연세대학교 교육과학관 502호
Email : virtue@yonsei.ac.kr
Copyright (c) 장인성연구네트워크 All Rights Reserved.